필과 묵의 세계 : 3인의 거장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윤형근
얼마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신 유홍준 교수님께서 S2A 갤러리에서 강의를 하시게 되었는데요, 이번에 열리는 전시의 기획에도 참여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시를 가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히 잘 알지만 이번 기회에 거장들의 좋은 기운들과 묵직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전시였기에 후기를 남겨봅니다.
전시는 제목 그대로 3인의 거장인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윤형근 세 분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대가 다르지만 무언가 세대를 떠나 하나의 정신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전시이기도 했습니다.

1. 윤형근
작년 PKM 갤러리에서 열렸던 윤형근 작가의 개인전 전시 방문 당시에도 참으로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이곳에는 그만의 정적이고 차분한 무채색의 느낌이 뒤에 이어지는 추사 김정희의 서체와 겸재 정선의 그림들과 매우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적인 우아함이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문득 윤형근 작가가 떠올리고는 하는데요, 이번 전시의 작품들도 그만의 섬세함과 묵직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전 개인전 때보다는 어두운색의 단색화가 주를 이룹니다.



2. 추사 김정희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섹션이 바로 추사 김정희의 서체가 담긴 작품들인데요, 특히 그의 중년시절부터 제주 유배 시절, 노년에 과천에서 지낸 시절까지의 서체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이기도 했습니다.

이 서체의 경우, 추사의 24세 때 중국의 문인들과 교류하던 시절의 작품으로 다소 느끼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중국에서는 상당히 좋아하는 서체였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중국을 다녀온 후 그 영향을 많이 받은듯 싶습니다.

위와 같이 상당히 조형적인 굵게 써 내려간 힘 있는 서체부터 하나의 시 같은 가녀린 서체까지 아주 다양했는데요, 내용 역시 그가 이동했던 흔적과 고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추사의 시적인 감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그만의 이야기들이 작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전시 옆에 아주 잘 설명되어 있어서 다소 한문을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마치 책과 같은 이 작품은 추사가 과천 시절에 썼던 편지로, 대략적인 내용은 노년의 추사가 젊은이들과 교류하면서 이야기 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추사는 중년시절부터 난초를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서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난초는 손을 대기가 어려워 실수를 하더라도 고쳐 쓸 수 없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습니다.

한때 불교에 심취했던 추사가 쓴 반야심경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당시의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부분인데요, 아마도 화엄사 절에서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전시장 한가운데에 눈에 띄는 푸른 글씨의 현판은 <사서루>라는 임금에게 하사받은 책이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유득공이 정조 대왕에게 하사하신 서적을 보관하기 위한 서재입니다.
해당 글씨체는 제주도 귀양 후 쓴 서체로 원판은 개인 소장이라 모각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유재>는 남김을 두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내용인즉,
기교를 다 쓰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에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 쓰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에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 쓰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복록을 다 쓰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
인데, 유홍준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대체로 현판 세 점이 비슷한 서체인데 약간씩 글의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유홍준 교수님이 선물 받아 연구실에 오랜 시간 걸려있었다가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을 준비하면서 기증하셨다고 합니다.

3. 겸재 정선
마지막 겸재 정선의 그림은 그야말로 어떻게 이렇게 그렸을까 할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산수화와 자연 풍경을 그린 걸작들이 생각보다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겸재 정선은 북악산 아래 (현 경복고등학교 부근)에 살면서 이 일대를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그중 백운동에서 흐르는 계곡의 모습 등 장동 8명을 주로 그리곤 하였다는데요, 생각보다 꽤 여러 작품이 있고 자세하고 섬세하게 그린 모습을 볼 수 있어 마치 그 시절의 자연 풍경을 사진처럼 보는 느낌이 듭니다


때로는 이렇게 잠자는 새와 곤충이 함께 있는 사랑스러운 꽃도 볼 수 있는데,
초충도의 경우는,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비교하는 맛이 있기도 합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강하지만 겸재의 초중도는 사실감이 더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실은 너무 대단한 작품들이다 보니 학술적인 측면에서의 설명은 다소 미흡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중이 봤을 때의 느끼는 그 느낌 그대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아주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이번 기회에 섹션 별로 각 3인의 거장의 생각과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전시라 생각이 듭니다.
전시 기간 : 2025. 2. 4 – 2025. 3. 22
관람 시간 : 화~토 10:00am – 6:00pm
(매주 일, 월요일 휴무)
위치 : S2A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