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 Mueck
론 뮤익
처음 론 뮤익 전시를, 그것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드디어 보는구나 싶을 만큼 쾌재를 지으신 분이 많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올 한 해 가장 큰 기대작이기도 한, 이미 오픈 전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론 뮤익 전실 오픈 첫날 방문하여 관람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사람도 많았지만 작품 하나하나 볼 것 많았던 전시기에 전시 이야기를 공유해 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공간이 넓은편이어서 웬만하면 내부가 북적이지 않는데 오늘 하루만큼은 정말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마 당분간 주말에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론 뮤익 Ron Mueck
론 뮤익은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인 부모가 작게 장난감 제조업을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인형과 다양한 생물 모형을 만들고 접했습니다. 훗날 쇼윈도 디자이너로서 일하다가 어린이 영화, TV 프로그램용 모형을 제작하면서 사실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들이 모여 지금의 극 사실주의 표현인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을 보면 와~ 신기하다! 너무 리얼한데?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기억과 생각, 경험과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조각의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게 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 작품들을 보면 크기도 크기이지만 그 디테일에 감탄하게 되는데요, 30년에 걸쳐 작업한 작품이 겨우 48점밖에 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한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표현하고 다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마지막에 그가 작업한 과정들을 여러 사진들로 묶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럼 이번 전시에 전시된 작품들을 정리해 봅니다.
마스크 Ⅱ, 2002
제5전시실은 전체적으로 하얀 공간 가운데에 작품들이 덩그러니 전시되어 있었고, 그중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 바로 마스크 작품이었습니다.
아마 언론에서도 뿌린 자료에서도 많이 보셨을 건데요, 실제로 보면 크기가 더 크고 매우 세세한 디테일을 가장 두드러지게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남자의 모습은 론 뮤익 자기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데요,
특히 바닥에 눌려있는 모습은 우리가 어딘가 기대어 있을 때 얼굴이 눌려있는 모습과도 비슷한데 이 느낌을 아주 잘 표현해 냈고, 또한 머리카락, 눈썹은 물론 피부의 잔주름, 코의 모공, 털까지 얼굴의 모든 것을 아주 세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앞에서 보면 마치 통으로 된 하나의 거대한 머리 같지만 뒤에서 보면 텅 비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대형 마스크인 것인데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만 판단할 때 꽉 차있는 것이 실은 껍데기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보통 작가들이 작품에서 여성을 표현할 때면 여리여리하고 매우 사랑스럽고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혹은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완전히 그 반대로 억척스럽고 강인한 삶의 무게를 견디는 마르지 않은 퉁퉁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거대하고 거친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삶의 고난을 애써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같은 여성으로서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는 여성의 몸을 분명 할퀴고 상처를 낼 텐데 말이지요.
특히 이 작품의 표정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고된 삶을 느낄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렬한 눈빛이 그녀만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침대에서, 2005
이번 전시 포스터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작품은 론 뮤익 작품 중에서도 매우 대형 작품에 속합니다.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크기에서 오히려 부풀려 표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좀 더 크게 다가오게 하기 위함인데요
론 뮤익은 이렇게 보통의 것들을 실제보다 축소하거나 크게 키우기도 하는데 크기 차이 하나로 사소한 것들을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는 점을 이번 전시에서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성의 모습은 사방에서 돌아보아도 어디 하나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멍하니 어딘가 바라볼 뿐인 시선이 계속해서 몰입과 집중을 만들게 하기도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지요.
또 재밌는 것은 가운데 정면에서 보면 얼굴이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 마치 어떤 상황에서도 피하고 싶은, 그저 쉬고 싶은 시선 회피를 주는 느낌도 듭니다.

치킨 / 맨, 2019
맞은편에 있는 작품은 팬티만 입은 할아버지와 닭이 대치하는 상황을 묘사했는데요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뭣만 했다 하면 시비 걸고 버럭 대는 못마땅한 할아버지가 닭에게까지 뭐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닭 입장에서 반대로 보면 이 할아버지 왜 이러나 하는 느낌인데요
마치 우리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는 순간들을 닭이라는 아주 자주 볼 수 있지만 날카로운 동물로 표현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초기 작품
그 뒤에는 론 뮤익의 초기 작품들도 여럿 볼 수 있었는데
앞선 작품들보다는 아주 거대한 작품들은 아니지만 그가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이 작품들을 표현하는지 좀 더 깊게 알 수 있습니다.
<유령>은 사춘기 소녀의 불안함을 현실의 사이즈보다 의도적으로 크게 표현했습니다.
힘은 없고 연약한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두렵고 불안한 모습, 자꾸만 기대고 싶은 모습을 표현한듯 싶습니다.


유령, 1998, 2014
역시 어린 십 대로 보이는 남녀가 막 사랑에 눈 떴을 때의 조심스러움을 표현한듯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와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남자는 서두르고 싶으나 여자는 매우 극도로 조심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젊은 연인, 2013
함께하는 관계에서 서로 다른 심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이 바로 <쇼핑하는 여인>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아 중인 엄마와 아이가 장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가는 모습은 사실 큰 임팩트를 강하게 남기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보면 어딘가 넋이 나가 지친 표정이 역력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바라봅니다.
하지만 두 손을 든 장바구니와 아이는 엄마에게는 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지요.
쇼핑하는 여인
매스, 2016-2017
그리고 가장 놀라움을 주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매스> 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들 감탄을 자아내곤 했는데요, 이 작품은 론 뮤익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크게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머리는 두개골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매개체로 쓰이기도 합니다.
론 뮤익 역시 이 작품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표현하였는데요,

매스(Mass)는 “다량의”라는 뜻이기도 한데 이렇게 많은 죽음들을 하나의 거대한 탑으로 거대한 형체로 경험함으로써 우리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며 그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 현재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배에 탄 남자, 2002
2013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처음 공개되었던 이 작품은 거대한 배에 남자가 유심히 째려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말이지요.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보는 순간 가진 것은 없으면서 남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속성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요, 거대한 배에는 크기에 비해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는 남자도 배 안에 있으니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특히 뒷모습을 보면 좀 더 공허하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외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공간 안에 가장 많이 몰려있기도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배에 타고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항해는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준비된 것 없으면서 하고 있는 것도 없으면서 멀리 떠나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어두운 장소, 2018
이 작품은 어두운 공간 안에 론 뮤익의 커다란 자화상 조각이 보이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만 찍고 지나야 할 정도라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오랫동안 보고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와 직접적인 대화를 하는 느낌으로 감상해야 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좀 더 실감난 작품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유튜브 영상도 같이 올려봅니다.
화제성이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첫날부터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작품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직관적인데 그 안에 들어있는 뜻은 우리가 한 번쯤은 공감해 봤을만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잘 풀어낸 작품들이기도 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주말에 사람이 다소 많을듯하니 참고하셔서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전시 기간 : 2025. 4. 11 – 2025. 7. 13
관람 시간 : 월, 화, 목, 금, 일 10:00am – 6:00pm / 수, 토 10:00am – 9:00pm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 6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