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The Brutalist 브루탈리스트 – 예술을 논하기 이전에 자본주의 사회 안의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 작품의 AI 사용에 대하여

The Brutalist

브루탈리스트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극장가에 좋은 영화들이 많이 상영 중인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작인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를 관람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려 러닝타임이 215분 (3시간 35분)이나 되는, 심지어는 영화 중간 15분 인터미션까지 있는 긴 시간 동안 과연 인내심을 가지고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 시간이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아주 모든 시간을 꽉 채운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를 단순히 아카데미 10개 부분 후보에 오르고, 골든글로브와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감독상을 받았다는 작품성 있는 영화로만 치부하기에는 예술사적으로, 역사적으로도 이야기할 부분이 많은 작품입니다.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적 요소와 미국의 이민자로서, 유대인이 느끼는 감정을 논하기 이전에 실은 인간의 아주 본성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기에 영화에 대한 소감뿐만 아니라 그 안의 해석이나 뜻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해당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신 후 해당 포스팅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the brutalist

1. 영화에 대하여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브래디 코베(Brady Corbet)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을 배경으로 예술과 자본주의, 이민자의 현실을 그린 영화입니다.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브래디 코베는 무려 1988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감독이기도 한데요, 생각보다 브루탈리스트는 거의 독립영화에 가까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작품 제작 과정 아내와 시나리오를 무려 7년 동안 기획하고 썼는데 그에 비해 촬영은 1달 정도로 생각보다 매우 단시간에 해냈다고 합니다. 추측건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시나리오를 준비한 만큼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사전 작업을 매우 촘촘히 했고 배우의 경험을 살려 실전에 맞게 적용하고 배우들 역시 잘 다져온 단단한 연기력으로 각자의 인물에 맞게 조화롭게 해낸 덕에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찍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최근 들어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AI의 사용도 한몫하기도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뒤에 다시 한번 이야기해 봅니다.

2. 브루탈리즘(Brutalism) 이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우선 제목에서도 언급되는 브루탈리즘에 대한 건축 양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브루탈리즘이란, 1950~1970년대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건물 외관에 마감재를 덧씌우는 것이 아닌 요즘 식으로 쉽게 말하면 노출 콘크리트 스타일의 건축양식을 말합니다. 건축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프랑스인이자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처음 만든 건축 형식으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현대 아파트의 시초가 된 마르세유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 1952), 런던 바비칸 센터 (Barbican Centre), 미국 보스턴 시청 (Boston City Hall) 등이 있습니다.

마르세유 유니테 다비타시옹 @FLC/ADGAP

이는 다양한 예술 전반적인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단순하지만 솔직하게 그대로 날것을 드러내는 형태로 독창적인 미학을 선보이면서 많은 아티스트에게도 지금까지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국내에도 인기가 많은 안도 다다오 역시 이러한 브루탈리즘에 영향을 많이 받은 대표적인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브루탈리즘이 유독 주목을 받는 것은 당시 처음 등장했을 때만에도 흉물스럽게 느껴졌지만 단순한 건축 스타일을 넘어 기능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정직하게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철학적 개념을 동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는 아마 이번 브루탈리스트 영화에서도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그대로 드러나는 하나의 미장센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3. 줄거리

영화는 전반적인 큰 맥락으로 보면 주인공인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가 나치의 눈을 피해 자신의 고국인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면서 미국 내에서 유대인 이민자로서, 그리고 건축가/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 조명합니다.

이미 독일 바우하우스를 졸업하고 고국에서 수많은 유수의 건축물을 설계한 그이지만 낯선 미국의 땅에서는 그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심지어는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받는 이민자로 살아갑니다.

사촌 아틸라 덕분에 미국에 어렵사리 이주했고 우선은 그의 도움으로 사촌의 가구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해리슨의 아들로부터 서재를 리모델링 해달라는 제안을 받아 훌륭한 서재를 만들지만 자금 회수를 못 받고 거기에 더해 미국인인 사촌의 아내는 그가 유대교라는 이유만으로 오해를 사게 만들어 결국 쫓겨나 험한 미국인 일용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그 와중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엄청난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그에게 건축물 설계를 맡기면서 헝가리에 남아있던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와 조카의 이민을 도와줄 수 있는 변호사를 소개해 주기도 하면서 도움을 줍니다.

라즐로는 빛과 공간을 담을 수 있는 과감한 설계도를 선보이면서 해리슨의 제안을 추진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고 예산의 압박까지 받으며 갖은 감시과 압박, 주변의 비난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급여에서 삭감할 만큼 건축물의 완성에 집착했으나 결국 자재를 운반하던 열차의 사고로 인해 건축을 잠시 중단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중 해리슨은 훗날 다시 해당 건축물을 완성할 것을 다시 제안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개했던 이탈리아의 채석장을 같이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험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그는 자본가인 해리슨, 벤 뷰렌의 가족들은 라즐로와 라즐로의 가족들을 금전적 정신적인 노예로 만들지만 건축가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4. 과연 예술가의 삶에서 자본주의란? 그리고 자본가에게 예술이란?

예술가의 삶은 언제나 고독하며 가난하다는 것은 흔히들 우리들이 인식하는 예술가의 삶입니다. 더불어 그 속에서 고통을 수반하는 삶이기도 하지요.

비록 극 중의 라즐로가 나치를 피해 미국에 오지 않았다 한들, 어떤 거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이 건축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건축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야 가능한 예술의 장르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투입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건축을 예술로 과연 논할 수 있는가라고도 하지만 위대한 건축은 르 코르 뷔지에처럼 하나의 시대의 철학을 반영하여 설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거대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때로는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비단 그것은 외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 자본의 투입 과정, 설계도,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 모든 부분에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종합예술이기도 합니다.

그럼 과연 자본가에게는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해리슨은 예술을 사랑하지만 스스로 창조하지 못합니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자본을 위해 새로운 누군가의 창의력을 수집하는 것뿐이지요. 대표적으로 영화를 서재를 이야기할 때 희귀한 책을 수집했다고 하는 장면부터가 그렇고, 건축가인 라즐로에게 자신이 절대 할 수 없는 능력에 매료되고 소유하고 싶었기에 결국 더 이상 돈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순간 라즐로를 소유하기 위한 악덕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까지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돈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지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나눠야 어느 정도 질서가 갖춰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면 이는 결국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나눠야 하는데 그 정당성을 사람들에게 가장 본능적이며 직관적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리슨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지지 못한 것은 라즐로의 크리에이티브 한 능력이었습니다. 예술의 주최자는 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라즐로가 태생적으로 그 능력이 있는 것인지,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쌓아온 덕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자국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과 경력, 곧 시간과 노력과 결과물이 있었고 결국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지지 못한 것은 라즐로가 가진 그 생각과 예술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라즐로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줍니다.

열정을 가지고 지속해야 하는 것. 그것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고통은 부득이하게 수반될 수밖에 없지만은 말이지요.

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라즐로와 그의 아내가 약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배경이 홀로코스트에서 탈출한 인물이라는 가정을 생각하면 어떤 누구도 전쟁의 상흔은 인간의 의지와는 다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라즐로와는 다르게 똑똑하며 자기통제가 강했던 아내 에르베젯 조차도 밤마다 전쟁의 기억과 영양실조로 인해 잃어버린 걷지 못한다는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은 현실의 극한 상처는 강인한 정신력으로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5. 창작 과정에서의 AI 사용 논란

최근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창작 과정에서 AI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감독인 브래디 코베는 단순히 헝가리어의 미세한 발음 교정 정도로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제작비를 아끼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하지만 문제는 AI 사용이 대부분 은밀한 부분에서 사용되기 시작되면 이를 쉽게 허용하는 순간 어디서부터가 창조의 영역이고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과연 이러한 논쟁을 가지고 있는 브루탈리스트의 영화에 대해 과연 툴로서의 AI 사용의 정도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공식적인 공표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유일하게 기술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은 창의성과 예술이라는 논란을 최근의 많은 AI 프로그램들은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창의성을 학습하기 시작하는 순간, 스탠리 큐브릭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처럼 AI의 상상력이 인간의 창의성을 넘어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 AI는 학습에 의해 발전될 수밖에 없다는 현재의 한계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런 날이 올지는 의문이지만 창조의 결과물에 있어서 AI의 사용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분명하게 논의되어 공표할 필요성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야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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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 Goldin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의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 – 예술은 어떻게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가

모든 아름다움의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Nan Goldin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포토그래퍼이자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진작가라 하면 바로 낸 골딘(Nan Goldin)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성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자신이 직접 겪은 미국 사회의 하위 계층과 문화, 삶을 사적이면서도 비밀스러운 민낯을 그대로 찍음으로써 1970년대 후반부터 주목을 받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마약 중독과 싸우고 치료하며 주변 사람들의 HIV 바이러스와 에이즈의 투병 과정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운 과정을 그린 <모든 아름다움의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또 하나의 그녀의 대표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로라 포이트러스(Laura Poitras)가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작년 국내에서도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던 화제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그녀가 진통제 약물 오남용으로 마약중독에 걸리게 한 미국 제약 회사 오너 가문인 새클러 가문을 고발하고 투쟁을 벌이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 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만큼 작품성 면에서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둠속으로 타락하게 되는지, 더불어 부를 가진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지 등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 볼 거리들을 제공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모든 아름다움의 유혈사태

영화는 그녀의 대표적인 사진집인 영화의 동일한 제목의 <모든 아름다움의 유혈사태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해당 사진집은 1970~80년대 그녀가 자신의 친구들, 뉴욕의 LGBTQ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삶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사진집으로 그녀가 겪은 냉담한 가정환경, 언니의 죽음, 애인의 폭력, 그리고 그 상황에서 빠지게 된 마약과 여성의 관점에서 본 섹슈얼리즘 등 다양한 상황을 담았으며 매우 적나라한 현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그대로 녹아든 솔직한 이야기와 기존의 관념을 깨부순 사진으로도 매우 유명한 그녀의 대표적인 사진집이기도 합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사진집의 스토리에서 좀 더 확장하고 진화하여 낸 골딘이 훗날 포토그래퍼로서 명성을 날린 이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마약으로 인해 고통받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대변하기도 하고 평범한 시민들을 마약 중독에 이르게 한 새클러 가문과 맞서 싸우는 과정 등 여러 사회활동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예까지 위협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저항하고 폭로하며 투쟁하는 모습은 예술가가 예술가로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 관철하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타락한 이들을 생각 없이 산다며 우선적으로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 타락의 과정에서는 태생적인 한계 속에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에 의해 좌우될 수 있으며 반대로 이를 통해 극복하고 변화될 수 있음을 다큐멘터리에서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피해를 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합니다.

낸 골딘이 사진을 찍으면서 성 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었던 상황을 극복했고 마약으로 고통받은 경험으로 다른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여 사회운동을 펼친 것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 구원하기 위해 깨우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으로 사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단지 인간적인 대우만으로도 되는 것이 아닌, 사회 제도나 물질적인 서포트도 필요합니다.

지금 어딘가에도 남모르게 또 다른 제 2의 낸 골딘이 분명 투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을 발견한다면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Nan Goldin 낸 골딘 – 예술은 어떻게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가 더 읽기"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 이 영화를 왜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하는 이유

The Zone of Interest

 

오랜만에 영화 관람 후기를 씁니다.

바로 요즘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인데요

다들 요즘 이 영화를 왜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상당히 생각하는 바가 많은 영화이기에 영화에 대한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개요

이 영화는 1933년에서 1945년 히틀러와 나치당 집권으로 시작해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이 패배할 때까지의 기간을 다룬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다룬 영화이기도 합니다. 대표적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쉰들러 리스트이기도 한데요

그중에서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보통 수용소 내부나 전쟁에 관한 참상을 이야기한다면

이 영화는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 중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지휘관과 그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로서의 생활상을 관객으로 하여금 멀리서 바라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내용을 다룬 독특한 영화이기도 하지요.

이 이야기는 실존 인물인 회스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고 합니다.

초기 조사에서 찾은 사진도 있다고 하여 가져와 봅니다.

이 영화를 위해 3년 동안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에서 조사하고 피해자와 생존자의 증언들을 수집했다고 하네요.

 

이번 영화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상, 국제 장편영화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독특한 세계관과 구성을 만드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 영화이기에 그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이 주목되면서 비록 비주류의 영화이지만 엄청난 화제와 주목을 몰고 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영화가 특히 화제인 이유는 그동안 많은 영화인들이 기다려온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 영화이기도 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뮤직비디오 혁명을 일으킨, 어디선가 한번은 본 매우 익숙한 명반인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Virtual Insanity 뮤직비디오로 아주 유명합니다.

 

감독은 영국 국적의 유대인이기도 해서인지 이번 영화가 특히나 더 와닿기도 한데요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한 당시의 수상소감에 최근의 하마스 공격이나 이스라엘 가자 지구 공격의 숨진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전쟁 상황 속에서 저항할 수 없는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물론 그것이 이번 영화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비판적인 공격도 많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끊임없이 역사 속에서 어떤 삶이 옳은 삶인지 끊임없이 반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네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포인트 5

 

이번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몇몇 장면들이 있습니다.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은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1. 마치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낙원, 하지만 그 속에는

그 뒤에 나오는 첫 장면은 정말 우리가 꿈꾸는 낙원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지휘관 회스와 아내인 루돌프와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마치 그림 같은 곳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보냅니다. 수영도 하고 피크닉도 하고 말이지요.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붙어사는 가족들은 아름다운 정원도 꾸몄습니다.

특히 아내가 매우 이 정원에 애정을 갖고 꾸몄는데요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수용소 안과 매우 대조를 이루는 시각적 화면으로 사용됩니다.

물론 수용소 안은 영화 안에서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철저히 그 가족의 관점으로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소름 돋기도 하지요.

 

영화 중반 즈음에 어린아이들과 회스가 물놀이를 하다가 강가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역겨운 것들을 마주하게 되지요. 회스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급히 집으로 들어갑니다.

본인이 행한 죄는 언젠가 다시 돌아온 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입니다.

 

 

2. 아내 루돌프의 대사와 행동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아내 루돌프입니다.

마치 남의 것이 내 것인 마냥 하는 장면이나 집에서 같이 사는 도우미들에게 하는 행동은 이기적인 무지에 대한 인간의 아주 단편적인 죄의식에 대해 보여줍니다.

 

 

3. 제3자의 관점

어느 날 아내 루돌프의 친정어머니가 집으로 방문합니다.

루돌프는 신이 나서 정원을 소개하고 지금 삶에 대한 노력과 만족도를 어머니에게 표현하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어두 컴컴한 밤, 어머니는 멀리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딸에게 말도 안 하고 편지만 남기고 급히 떠납니다.

가족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일반적인 제3자가 느끼는 죄의식에 대한 고통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장 첫 장면에는 한참 동안 스크린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 주변의 소리만을 담아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요하지만 그 속에서는 많은 소리가 들리는데요 관객으로 하여금 먼저 그 느낌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온전히 느끼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이는 뒤에 나오는 아름다운 장면들과 아주 대조되는 느낌이라서 오히려 소름이 돋게 됩니다.

 

 

4. 회스의 침묵과 고뇌

회스는 그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는 아닌데요 묵묵히 자기 할 일만을 합니다. 마치 공무원같이 말이죠.

명령이 떨어지면 명령대로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권력을 쥐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군분투합니다.

그것이 어떤 악을 가져다주는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능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행해야 하지만 거부해야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부정하는 악의 근원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행할 때 나오는 아주 극단적인 장면들이 마지막에 표현됩니다. 거스르고 싶지만 거스를 수 없는 것.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비인간적 행동이라면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5. 알렉산드라의 행동

영화 중간에는 루돌프 가족과 대비되는 인물인 알렉산드라가 나옵니다.

가족과 관계없는 인물이지만 이 캐릭터도 실존 인물이기도 한데 당시 유대인들을 위해 몰래 사과를 가져다 놓은 인물입니다.

독특한 것은 밤에 몰래 숨어서 해야 했던 일이라는 것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흑백으로 표현하면서

선이란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나온 루돌프 가족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환하지만 결코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이기에 이와 매우 대조되는 역할로 보입니다.

 

 

재미로만 보는 영화는 아니지만 우리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아주 좋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역사라는 것은 각 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회 구성원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소리냈다면 과연 이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화면구성, 특히 색과 소리가 상당히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잘 담아내고 있어서인지 역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답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로도 매우 잘만든 웰메이드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소 초반에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영화에 집중해 보시면 많은 것들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영화가 음향상을 받은 만큼 사운드가 아주 중요한 영화기도 하니 소리에 집중해서 보시면 좋기에 극장에서 몰입해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 이 영화를 왜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하는 이유 더 읽기"

JoanDidion 조앤디디온

Joan Didion <The Center Will Not Hold 조앤 디디온의 초상>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추천

Joan Didion 

<The Center Will Not Hold>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중 볼만한 좋은 다큐멘터리인 조앤 디디온의 초상 (Joan Didion : The Center Will Not Hold)을 소개해 봅니다.

조앤 디디온 (Joan Didion)은 바로 미국 유명 여성 작가이자 보그의 에디터이기도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17년에 나온 작품으로, 죽기 전, 작가 조앤 디디온에 대한 인터뷰와 일생을 덤덤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녀의 글과 생각, 삶의 자세만큼 다큐멘터리의 영상 역시 전체적인 흐름도 묵직하게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 그 먹먹함이 전해져 옵니다.

지금은 타계한 그녀를 기리며 다큐멘터리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Joan Didion 조앤 디디온

출생: 1934년 12월 5일 – 2021년 12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국적 : 미국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 이해를 돕기 위해 조앤 디디온의 일생을 잠시 소개해 봅니다.

193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났다. 버클리대학 영문과 재학 중 〈보그 Vogue 〉가 후원한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졸업 후 〈보그〉에 취직했다. 뉴욕 〈보그〉에서 에디터로 일하던 중, 1963년에 첫 번째 소설 《Run, River》를 발표했다. 작가인 존 그레고리 던과 결혼하여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후, 여러 편의 소설과 논픽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특히 ‘소설처럼 읽히는 저널리즘’을 뜻하는 뉴저널리즘의 기수로, 미국 유수의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기사를 기고했다. 2005년에 《상실 The Year of Magical Thinking》로 전미도서상(논픽션 부문)을, 2007년에 미국 도서재단 메달과 미국 작가조합 에블린 F. 버키 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에 하버드대학 명예 문학박사와 2011년에 예일대학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1년 뉴욕에서 타계했다.

(출처 : 교보문고)

영상에서는 조앤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전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틈틈이 조앤이 썼던 글에 대한 사건 사고에 대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변 인물이 보는 조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빼놓으려야 빼놓을 수 없는 남편 존 그레고리 던 (John Greory Dunne)과 퀸타나 루 던 (Quintana Roo Dunne)에 대한 이야기기가 이어집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조앤은 주로 혼란스러웠던 미국의 어두운 면을 글로서 대담하게 표현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객관성과 단편성을 거부하는, 새로운 목소리의 뉴 저널리즘에 대한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영화 전반부는 조앤이 썼던 글에 대한 당시의 사건, 가해자의 인터뷰 등에서 느끼고 겪었던 것들에 대한 내용을 조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설명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로 남편과 입양한 딸 퀸타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조앤 디디온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퀸타나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고, 함께 병문안을 다녀온 남편은 이유 없이 갑자기 집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가게 되지요.

그 뒤 6개월 후, 퀸타나도 병이 더욱 악화되어 결국 조앤을 떠납니다.

그렇게 짧은 간격으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둘을 잃은 조앤은 그 당시 느꼈던 슬픔과 상실감을 덤덤히 그녀만의 문체로 풀어 글로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 문학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낳았던, 그리고 지금까지 명작으로, 꼭 읽어봐야 할 베스트셀러인 ‘상실 (The Year of Magical Thinking)’이라는 책으로 출간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국내에서 한국어판은 절판된 상태이고 영문판만 구입 가능합니다.

예전에 배우 문가영이 tvN의 ‘문제적 남자’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타일러에게 좋은 책을 추천 받고 싶다고 했을 때, 타일러가 이 책을 추천했다고 할 정도로 좋은 책입니다. 

특히 상실이란 책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이전의 글이 주로 시대정신을 반한 복합적인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문화적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 저널리즘에 가까웠던 것에 반해 개인의 성찰을 담은 회고록이기에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키며 문학과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한 독특한 문체와 형태로 표현됩니다. 그만큼 영문학적으로, 글로서도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의 슬픔을 조앤만의 이성적인 관점으로 덤덤하게 풀어냈다고 하지만, 읽어보신 분들은 책을 덮는 순간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과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하네요. 더군다나 조앤과 남편은 주변에서도 알만한 잉꼬부부이기도 했고, 서로의 소울메이트도 했으니까요.

조앤 역시 인터뷰에서 글 쓰는 남편이 아니었으면 자신이 결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얘기했으니 말입니다. 사진을 보아도 금슬이 너무 좋아보이는 부부이기도 했지만, 조앤이 말하길, 남편이 진정한 소울메이트 였다고 하니 남편이 곁에 없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특히 ‘상실’이란 책은 남편을 잃은 슬픔이 주가 됩니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안타깝게도 연이어 하나밖에 없는 딸이였던 퀸타나가 하늘나라로 되었고, 아무래도 남편의 죽음에 연이은 일이기에 퀸타나의 죽음은 이후 조앤이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퀸타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은 또 하나의 책인 ‘푸른 밤 (Blue Night)’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가족을 잃는다는 슬픔은 과연 어떤걸까요.

그 어떤것보다 세상에서 한번쯤은 마주해야 할 가장 큰 상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기에도 언젠가는 다가올 이야기이기에 남의 일일 수 없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결국 살아내야 하고, 그 삶을 또 다른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가져준다면 그 역시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진정한 삶에 대해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가까이 있을수록 더욱 소중히 많은 시간을 보내며 좋은 기억을 쌓고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불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두려워 할 필요 없이 언젠가는 스스로도 맞이할 일이라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Joan Didion <The Center Will Not Hold 조앤 디디온의 초상>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추천 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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