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 Kahlo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 전 《 Viva Frida Kahlo 》 – 성남큐브미술관 기획 전시

Frida Kahlo

《 Viva Frida Kahlo 》

프리다 칼로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이기도 한데요, 그녀의 그림만큼 기구한 그녀의 삶 역시 너무나 잘 알려진 터라 예술에 조예가 없는 대중들까지도 익히 너무나 잘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에 멕시코에서도 국보로 지정되어 외부로 반출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대신 일종의 원작자의 사본인 레플리카(Replica) 전시로 해외에서 전시가 열리고는 하는데요, 레플리카 작품들도 이렇게 많은 양이 전시되는 것은 흔하지는 않은 일이라서 이번 전시는 프리다 칼로의 삶 전체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던 전시이기에 후기를 남겨봅니다.

이전 얼리버드 티켓 오픈 시 소개해 드린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우선 입구에 들어서면 프리다 칼로의 집을 재현해놓은 배경에 그녀의 작업 공간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색감부터 프리다 칼로의 화려한 색감의 그림과 맞물려있는 집입니다. 현재는 이 공간은 프리다 칼로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하네요.

전시장은 그녀의 초기 작품부터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차례대로 전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초기 작품 (1907-1932)

이번에 특히 초기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그동안 몰랐던 그녀의 기록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그림은 바로 그녀의 운명을 뒤바꿔 놓은 교통사고 장면을 스케치한 그림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원래 의사가 되어 싶어 했으나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를 안고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은 앞으로 그녀의 인생의 불운을 예고하는 것만 같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자신의 몸 상태가 그리 심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사고 이후 그리기 시작한 첫 그림은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우리가 알던 자극적인 느낌보다는 아주 차분하고 덤덤한 느낌입니다.

이 작품은 다소 평범해 보이지만 버스 안 풍경 속 사람들이 당시 멕시코의 사람들을 보여주어 눈길을 끌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 하면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기도 하지요.

덩치 큰 디에고와 그 안에서 순종적인 프리다의 모습은 프리다가 그를 얼만큼 존경하고 여자로서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훗날 이 사랑과 존경이 프리다에게는 또 하나의 삶의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프리다는 교통사고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임신을 시도하고 유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와중에 느끼는 상실과 좌절은 아마 많은 여성분이시라면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접 겪은 그 아픔을 아주 노골적으로 그렸기에 보면 볼수록 더 아프게 와닿지 않나 싶네요.

그녀의 초기 작품들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그림체를 이때부터 보여주기도 합니다.

루더 버뱅크가 잡고 있는 식물은 그의 연구와 업적을 상징하고 잎은 살아있지만 뿌리는 죽은 상태로 자연이 순환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인간의 과학적 개입이 반영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상당히 철학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프리다 칼로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는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한때 미국에서도 지냈던 프리다는 당시 멕시코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자신의 뿌리는 멕시코라는 것을 증명하는 그림들도 곳곳에 많이 보이는데 이는 멕시코의 상징인 원주민, 식물, 아즈텍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집어넣은 형태로 보입니다.

2. 중기 (1933-1949)

그녀가 가장 작품을 많이 남긴 시기가 1930~40년대 정도 되는데, 1939년에는 멕시코에 돌아와 디에고와의 이혼 절차를 밟기도 하면서 그녀의 복잡한 심리상태와 주체성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많이 선보입니다.

이<상처 입은 식탁>은 그중에서도 멕시코에서 열린 대규모 초현실주의 국제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리다는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한 작품입니다.

언뜻 보면 구성이 <최후의 만찬>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다소 섬뜩해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각각의 그림마다 디테일에 다양한 상징성이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프리다는 디에고가 자주 입었던 작업복을 입고 있고, 그 왼쪽은 마치 디에고를 상징하는 듯한 큰 덩치의 유다를 그렸습니다. 유다는 예술을 배신하였는데 아마 디에고에 대한 원망을 나타내는 듯하게 보입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구소련에서 작품이 분실되었다가 65년 만에 다시 찾은 그림이라고도 합니다.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프리다의 그림을 탐하던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그렇기에 멕시코에서도 현재까지 프리다의 그림은 함부로 해외로 반출시키거나 빌려주지 않기도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남편 디에고에 대한 애증과 원망은 그림 곳곳에서 계속해서 보입니다.

프리다 이전에 이미 화가로서의 명성이 높았던 디에고는 수많은 불륜을 저질렀는데, 그중에서도 자신의 여동생과 저지른 불륜은 프리다에게는 크나큰 상처였습니다.

<기억(심장)>이라는 작품 역시 보면 왼쪽에는 동생을 상징하는 듯한 교복이, 오른쪽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듯한 멕시코 전통 복장이 있고, 큐피드의 화살이 프리다의 몸의 상처를 크게 뚫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는 당시 뉴스에서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인 남성이 뻔뻔하게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표정 짓는 인물과 동일시하여 그린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어쩌면 너무나 잔인한 그림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위에 평화의 비둘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와중에도 프리다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한참 뒤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다시 디에고를 받아들입니다. 이해는 안가지만 너무나 사랑하면 과연 그럴 수 있는 걸까요?

실은 그녀의 상처는 비단 디에고뿐만은 아닙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가족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6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이미 다리가 아픈 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자신이 태어나 얼마 안 된 여동생으로 인해 흑인 유모에게 젖을 먹고 자라는 등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의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심적으로 예민한 프리다가 느꼈던 외로움 같은 것들이 그림 곳곳에 표현되기도 합니다.

지나간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은 그녀가 편히 있을 때조차 계속해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을 보면 마치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 고통을 정면으로 함께 느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 모든 상처를 프리다는 몸이 가장 릴랙스 되는 상태인 욕조에서마저 느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교통사고에 대한 후유증과 고통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린 그림인 <부러진 척추>는 그 잔인함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애써 견뎌내는 얼굴, 그리고 어느 하나 성한데 없이 못으로 난도질당한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이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은 그녀가 디에고에 대한 마음을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그린 내용이기도 합니다. 어둠과 밝음을 둘로 나누어 마치 자신을 대지의 여신처럼 가운데 두고 디에고를 어린아이를 보듬듯 그린 모습은 프리다가 얼마나 그를 소유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지,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해당 작품은 전시 뒤쪽에 걸려있는 프리다의 일기 안 스케치에서 비롯된 작품이기도 해서 비교해서 보면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디에고와 이혼 후 그린, 프리다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한 <두 명의 프리다>는 그녀의 기분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테우아나를 입은 프리다는 디에고가 사랑했던 프리다인 반면, 왼쪽의 빅토리아 시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프리다는 디에고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프리다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두 프리다는 여전히 같은 프리다이고 서로의 심장과 손이 맞닿아 있는 것을 보면 어찌내 저찌내 해도 디에고를 떠날 수 없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프리다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떠났어도 여전히 고통은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

또한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아픔과 유산으로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자연과 동물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에는 거미원숭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디에고가 프리다를 위해 선물한 동물로서 내면에 숨겨진 야만성과 원시성을 상징합니다. 특히 새끼를 유난히 아끼는 동물이지만 과도하게 사랑하기도 해서인지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3. 말기 (1950-1954)

50년대부터 프리다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발가락까지 잘라야 할 정도라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말기 작품은 움직이지 못한 채 그려야 했기에 정물화나 주를 이룹니다.

이때 그린 대표적인 그림이 당시 주치의였던 파렐 박사에 대한 고마움의 뜻을 전한 그림과 과일을 그린 그림들입니다.

대체적으로 색감은 입구에 붙여진 집의 풍경의 색감과도 유사한 멕시코 특유의 쨍하고 환한 색감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는 과일 정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신선한 과일의 생명력과 탐스럽게 익지만 언젠가는 썩어가는 모습을 인생에 비유해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이 수박을 그린 <삶이여 만세>라는 작품은 각 수박마다의 명도와 채도 등을 달리하여 수박이 익어감에 따른 다른 모습들을 삶에 비유하여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프리다가 요절하기 직전에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요, 씨가 없는 수박도 있고 씨가 있는 수박도 있고 껍질이 푸르거나 누런 것들도 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지면서 일종의 숙성의 과정을 한 프레임에 보여줌으로써 인생 전체의 찬란한 날과 생이 끝나는 날들을 비유해서 그린 듯 보입니다.

4. Photography and Diary

마지막 섹션은 프리다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과 그녀가 썼던 일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일기 중에서는 특히 디에고에 대한 마음이 아주 절절히 묻어나는 듯해 보입니다.

사랑을 넘어 소울메이트로서 그와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쓴 글들을 보니 그림과는 또 다르게 아린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통 원화 그림을 보지만 레플리카 그림만으로도 이렇게 그녀의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보면 프리다 칼로는 실로 대단한 화가임에는 틀림없지 않나 싶습니다.

전시는 며칠 남지 않았지만 프리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프리다의 생애 전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전시라 생각됩니다.

전시 기간 : 2024. 12. 13 – 2025. 3. 16

관람 시간 : 화~일 11:00am – 6:00pm (입장 마감 5:00pm)

(매주 월요일 휴무)

위치 :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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